그만두지 못하는 이유: 동료들에게 보내는 사랑의 편지
(Peer to Peer, 온수공간, 2022.12.15.~12.31.)

/ 고안철 (작가, 기획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아직은 미술을 하고 있다. '아직'이라고 한 것은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는 마음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득 미술을 좋아하는지 고민이 들 때가 있다. 시각적으로도 그 외 적으로도 새롭고 즐거운 순간 혹은 경험이 점점 드물어지는 것은 분명하다. 어떤 일이든 좋아서 하는 것만은 아니지만 좋지 않다면 '굳이 나까지 해야 할까'라는 생각 같기도 하다. 어찌 됐든 그 고민의 결과이자 아직 미술을 하는 이유는 이게 좋은지는 모르겠지만(마냥 좋아하진 않지만) 미술 하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럼 미술 하는 사람을 왜 좋아할까? 단지 미술을 한다'고 그들을 좋아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심지어 미술을 하지만 싫어하는(관심 없는) 사람도 있다. 좋아하는 사람만 놓고 봤을 때도 잘 모르겠다. 좋은 데는 이유가 없다는데, 좋아하다 보니 미술 하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주변 대부 분이 그런 사람들이기도 하다. 대학 입학부터 계산하면 벌써 10년이니 그럴 만도 하다. 심지어 데이팅 애플리케이션에서도 시각 예술과 관련된 사람과 보통 매칭이 된다. 마치 운명의 굴레에 빠진 사람처럼 보일까 걱정이다.

올해 열린 15회 카셀 도큐멘타의 예술총감독 루앙루파는 "Make friends, not art!”라고 했다. 감히 세계적인 이벤트와 견주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미술이 아닌 친구 만들기'는 <Peer to Peer>의 기획 배경이다. 지난해 손지형은 한 갤러리를 일주일간 사용할 기회가 생겼고, 작업실을 같이 쓰는 송민지, 조휘경, 최희원과 전시하기로 했다. 기획을 부탁 받은 나는 익숙한 사람끼리 하는 것보다 궁금했던 작가를 섭외하기를 제안했다. 박은진, 차시헌, 홍기하, 홍자영에게 연락했고, 그렇게 첫 번째 전시를 함께 만들었다.

이번 <Peer to Peer>는 작년에 섭외된 작가 넷이 관심 있는 사람을 한 명씩 추가로 섭외했다. 김보원, 김의선, 유진정, 홍예준이 합류했고, 포스터 디자인을 한 인현진도 프로젝트 과정에 함께 했다. 다급하게 준비하느라 세 번의 만남밖에 갖지 못했던 작년보다 긴 호흡으로 올해에는 교류 할 수 있었다. 전시 전까지 6회의 정기 단체모임과 더불어 일대일로도 각자 만났다. 어떤 목표를갖기보다는 전시라는 구실로 서로 알아갔다. 그 관계 속에서 억지로 의미를 찾거나 하나의 주제로 작업을 묶으려고 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나는 참여자 결정부터 이번 전시에 낸 작품까지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참여자에 따라 약 1년에서 반년 동안 함께 대화만 했을 뿐이다. 생산적인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제안을 잘 따라줘서 고맙다. 사회 통념적 기준으로 보면 목적 없는 만남이겠지만, 이렇게 모인 것만으로 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미술 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붙임성 없는 내가 그나마 마음 둘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관심사는 다르지만 자연스럽게 공유하고 있는 그들의 감수성이 편하다.

단체보다 개인이 우선시되는 시대지만, 사람 간의 관계는 여전히 중요하다. 미술 역시 혼자서 한 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작업만 해도 마냥 좋다면, 그래도 괜찮다. 그게 아니라면 무엇을 하든 혼자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무엇과 연결되기 위한 매개로 '미술'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넓기도 좁기도 한 이 분야에서 가고자 하는 방향과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다르기에 자연스럽게 흩어지겠지만, 서로가 연결되어있는 감각이 있다. 아직은 우리 대부분이 그 여정의 출발점에서 있고, 지금 이 위치에서 함께할 수 있다.

케빈 베이컨 법칙을 따르면 모두를 연결할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네트워킹할 수 있는 범위가 있다. <Peer to Peer>에는 고작 14명이 참여했고, 누군가에게는 우리가 권력으로 보일 수도 있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공공 지원금으로 사교적 모임을 가진 것처럼 볼 수도 있겠다. 그렇게 봤다면, 당신과 내가 생각하는 '미술' 그리고 '공공'의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외롭다면, DM 하시라. 당신의 미술에 도움은 못 되더라 도 동료가 될 수는 있다.

나는 <Peer to Peer> 를 편애한다. 김보원, 김의선, 박은진, 손지형, 송민지, 유진정, 인현진, 조회경, 차시헌, 최희원, 홍기하, 홍예준, 홍자영이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으면 한다. 하지만 일반적 인 전시 소개처럼 그들의 작업을 하나하나 설명하는 방식은 재미없을 것 같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작업만큼이나 매력적인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전시를 보고 누군가에게 관심이 생겼 다면, 연락해서 〈Peer to Peer> 를 확장하기를 기대한다. 이 글을 빌어, 그동안 함께했고 앞으로 함께 할 동료 모두에게 사랑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