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모든 것을 매개한다
(물은 모든 것을 매개한다, 갤러리 밈, 2023.8.16.~9.3.)

/ 어유진 (큐레이터)


 《물은 모든 것을 매개한다》는 육지에서 숨쉬던 관객에게 심해에서 호흡하는 방법을 알려주고자 한다. 각자의 방식으로 심해를 유영하던 젊은 여성조각가 3인의 매개를 통한 연대는 문화유전자1인 밈 (MEME)에서도 일어나지만, 이는 세 작가가 지닌 고유의 호흡법으로도 일어난다.
심해는 햇빛이 닿지 않는 깊은 바다로, 인간은 기존의 호흡법을 버리고 새로운 인지감각을 개방해야 한다. 전시장에서 관객들은 세 조각가에 의해 일상과는 다른 환경에 놓이며, 사뭇 다른 호흡법을 통해 세 작가가 제시하는 새로운 감각 속으로 깊이 잠수하게 된다. 주변 소음을 차단하고 세 작가가 제시하 는 풍경 속으로 빠져들다 보면, 우리는 일상을 잊고 새로운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햇빛도 산소도 없는 심해는 인간에게는 척박한 공간처럼 보이지만, 다양한 심해어와 심해 생물들이 관찰되고 있다. 수심 10km에서의 수압은 지상의 1,000배에 이르지만, 가자미와 같은 생명체들이 발견된다. 인간이 볼 수 없 고, 냄새를 맡을 수 없으며, 숨 쉬는 데에도 제약이 있지만 그들은 그들 만의 생태계를 형성하며 지구 상에서 인간과 공생하는 것이다. 그들은 어떤 호흡법으로 어떻게 살아가는 걸까. 심해에서의 호흡법을 알고 싶다면, 기꺼이 심해로 들어가기를 권유한다. 인간이 가진 벽을 허문 뒤에야 타자로의 거리가 사 라지고 한 걸음 더 그 곁으로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자화된 ‘물’의 연약하면서도 강하며, 가변적이기에 자신이 몸담는 그릇에 따라 형태를 달리하 고 공간감을 유동적으로 만드는 물성부터 가까이 들여다보기로 했다. 이러한 물성을 닮은 태도로 세 작가는 각자의 시선을 펼치며 동시에 전체성을 유지한다. 루스 이리가레2가 ‘식물의 사유’에서 언급했 듯, 우리의 전체성은 자신의 단독성을 잃지 않으면서 타자와의 관계에 들어가거나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에 의해 변화할 수 있다. 이 전시에서 세 명의 젊은 여성 조각가들은 '세밀한 관찰자이자 채집자(김 의선)', '근원에 대한 연구자(손희민)', '물리적 제약을 탈피하고자 하는 시각 예술가(허연화)'로서 자신의 태도를 유지하며 물의 매개성에 대한 관심으로 전시장 내에서 함께 호흡하며 유영하고 있다.

  김의선(b.1997)은 물의 ‘스며드는 속성’을 통해 숨죽이고 끊임없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이질적인 것들의 관계 맺기를 보여준다. 작가의 섬미한 시선을 따라 호흡하다 보면, 타자라는 선은 어느새 지워 진 채 자아 내부 깊숙이 타자가 침투해 있는 것을 알아 차리게 된다. 너무도 단단하고 수직적인 석고 는 그보다 훨씬 무른 물성의 물에게 서서히 침식당하고, 침식의 흔적은 전시 기간동안 점점 그 크기를 지속적으로 확장해간다. 다채롭고 분명하게 새겨진 물의 흔적은 석고에 남아 시간에 따라 다양한 빛을 뿜어내고, 은근한 변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숨죽이고 모든 감각을 곤두세우도록 한다. 작가가 채집한 식 물 또한 인위적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 선명하고도 자연스럽게 발생되는 움직임을 지닌다. 식물이 만들 어내는 섬세한 선적 요소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흔들리고 변화하며 물질들로 가득한 공간에서 비물질 적 공간감을 더욱 넓혀 나간다.

(...)

  지구에 닥친 각종 이상기후와 전염병 등으로 우린 우리 앞에 모면한 큰 문제를 체감하고 있다. 우리 를 매개해 줄 큰 벽과 그 앞에 선 작고 무력한 존재임을 체감하는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우리가 사는 벽에 갇힌 환경과 식물이 자라는 열린 장소의 문턱을 넘어, 우리는 이쪽에서 저쪽으로 곧 장 들어가야 합니다.’마이클 마더의 위 언급처럼 우리는 지금 식물의 사유를 해야 할 때 이다. 수직 적으로 올라가려 하는 것이 아닌, 뿌리처럼 얽히고 엉키며 수평적이거나 유기적인 곡선을 그리며 계속 해서 뻗어가는 리좀적 사고4는 동시대 가장 전제되어야 하는 태도이며, 동시대 인간은 리좀적 사유를 통해 연대성을 강화하며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세 명의 젊은 조각가들이 각각 제시한 시공간의 감각을 인지하고, 새로운 인식의 확장을 통해 호흡할 수 있게 된 당신은 이제 이 전시장을 나서며 가장 먼저 무엇을 할 것인가.


The End.




1 ‘밈(Meme)’이라는 단어는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진화생물학자)의 베스트 셀러인 『이기적 유전자』 에서 유래되었다. 리처드 도킨 스는 복제된 것이라는 그리스 단어 'mimema'에서 나온 'mimeme'을, 유전자(gene)와 유사한 한 음절 단어로 만들어서 '밈'이라는 단어를 만 들어냈다. 밈은 문화를 복제시키는 복제자이다. 밈도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이기적이고, 어떤 무엇보다 그 자신의 확산을 원한다. 밈은 개인 이나 집단의 뇌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뇌로 전달되면서 전 세계로 퍼진다.

2
루스 이리가레, 마이클 마더, 『식물의 사유』, 알렙, 2020, p.46.

3 루스 이리가레, 마이클 마더, 『식물의 사유』, 알렙, 2020, p.230

4 들뢰즈와 가타리의 공저 『천 개의 고원』에 등장하는 은유적 철학 용어이다. 리좀은 어떤 것이 무엇과 관계하는가에 따라 본질이 달라지 고 관계의 질이 달라진다는 사유방식으로 내재적이고 유목적인 사유방식이다. 리좀적 사유는 줄기들이 어떤 중심뿌리 없이 접속되고 분기되 는 줄기식물처럼 특정한 사고의 기반 없이 다양한 것들의 차이와 복수성을 다원화하고 그것을 통해 새롭게 번식시킨다.